치매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이런 질문을 해왔습니다. 왜 같은 나이, 비슷한 뇌 상태를 가진 사람들 중 누군가는 치매 증상이 나타나고, 누군가는 훨씬 늦게 나타날까? 그 차이를 설명하는 개념 중 하나가 '인지 예비력(cognitive reserve)'입니다. 살아오는 동안 다양한 지적·정서적 활동을 통해 쌓은 뇌의 유연성과 적응력이 치매 증상의 발현을 늦춘다는 것입니다.
일기 쓰기는 이 인지 예비력을 기르는 활동 중 하나입니다.
일기를 쓸 때 뇌에서 일어나는 일들
일기를 쓰는 것은 단순해 보이지만, 뇌 입장에서는 꽤 복잡한 작업입니다.
하루를 돌아보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리는 과정에서 기억 인출 능력이 훈련됩니다. 어떤 순서로 일어났는지 정리하는 것은 시간 순서 기억과 관련된 뇌 영역을 자극합니다. 적절한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언어 능력을 유지합니다. 그리고 그날의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것은 전두엽의 감정 조절 기능과 연결됩니다.
이 모든 과정이 매일 반복됩니다. 근력 운동이 근육을 단련하듯, 매일의 글쓰기가 뇌를 단련합니다.
텍사스 대학교 제임스 페니베이커(James W. Pennebaker) 박사는 30년 이상 '표현적 글쓰기(expressive writing)'가 정신·신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습니다. 감정적인 경험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스트레스 관련 지표를 낮추고 심리적 안정감을 높인다는 보고가 이어져 왔습니다 [1]. 노인을 대상으로는 생애사 회상과 글쓰기를 결합한 회상 요법(reminiscence therapy)이 우울감을 낮추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근거가 쌓이고 있습니다 [2].
나를 기록해두는 것의 의미
치매의 가장 두려운 측면 중 하나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어간다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것, 살아온 이야기, 소중한 사람들과의 기억이 점점 흐려집니다.
일기는 그 흐려짐에 맞서는 방법입니다. 지금 이 순간 쓰는 글 한 줄 한 줄이 '나'를 기록해둡니다. 오늘 먹은 것, 오늘 만난 사람, 오늘 느낀 감정, 오늘 감사했던 것들이 쌓이면서 나만의 이야기가 됩니다.
치매가 진행된 후에도, 가족들이 함께 일기를 읽으며 환자가 좋아했던 것들, 중요하게 여겼던 것들을 돌봄에 반영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생선찌개를 좋아하셨어", "아버지는 트로트 음악을 들으시면 편안해지셨어"라는 기록이 언젠가 중요한 정보가 됩니다.
치매가 걱정되는 분에게
아직 치매 진단을 받지 않았지만,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다거나 치매가 걱정되는 분들에게도 일기 쓰기는 의미 있는 실천입니다.
일기를 쓰면서 오늘 하루를 돌아보고, 무엇을 먹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무엇을 느꼈는지를 정리하는 습관 자체가 뇌를 활성화합니다. 규칙적인 글쓰기는 가장 접근하기 쉬운 인지 훈련 중 하나입니다.
어떻게 시작할까요
처음 일기를 쓰려 할 때 가장 흔한 장벽은 '잘 써야 한다'는 부담입니다. 하지만 일기는 누구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맞춤법이 틀려도, 문장이 어색해도, 한 줄만 써도 괜찮습니다.
"오늘 날씨가 좋았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쓰는 것이 습관 형성에 도움이 됩니다. 저녁 식사 후나 잠들기 전 10~15분을 정해두세요. 무엇을 써야 할지 막막하다면 이런 질문들에 답해보세요.
- 오늘 무엇을 먹었나요?
- 오늘 누구와 이야기했나요?
- 오늘 날씨는 어땠나요?
- 오늘 기분이 어떠셨나요?
- 오늘 감사한 일이 있었나요?
가족이 함께 쓰는 일기
치매 환자가 혼자 쓰기 어려울 때는 가족이 함께 쓰는 방식도 있습니다. 가족이 질문하고 환자가 대답하면 가족이 받아쓰거나, 오래된 사진을 함께 보면서 기억을 떠올리며 쓰거나, 환자가 짧은 문장을 쓰고 가족이 보완하는 방식으로도 일기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자체가 대화의 기회가 되고, 환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인정받는 소중한 시간이 됩니다.
'내일의 일기장'을 소개합니다
저희 서비스는 치매 환자와 그 가족, 그리고 뇌 건강이 걱정되는 분들을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큰 글씨, 날씨·기분·식사·기억·감사·내일의 나에게 등 구조화된 입력 항목, 자동 저장과 날짜별 정리로 일기 쓰기를 더 쉽게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드립니다.
오늘의 기록이 내일을 지킵니다.
일기 쓰기가 치매 예방과 관리에 도움이 되지만, 의학적 치료를 대체하지는 않습니다. 인지 기능에 걱정이 있으시면 전문 의료진과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문헌
- Pennebaker JW, Smyth JM. Opening Up by Writing It Down (3rd ed.). Guilford Press, 2016. 관련 개관: https://pubmed.ncbi.nlm.nih.gov/15641418/
- Woods B et al. Reminiscence therapy for dementia. Cochrane Database of Systematic Reviews, 2018. https://pubmed.ncbi.nlm.nih.gov/29493789/